정말 우간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



사건의 발단은 물배달이었다.


 얼마전에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꿀팁을 들었다. 생수를 1박스라도 주문하면 집으로 배달해 준다는 것이었다. 우간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배달이라니? 집으로 배달이라니...) 매번 생수를 사서 집에 오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무거운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 2년을 지내왔다. (나란 사람...) 이제서야 알게된게 후회스럽지만 남은 2달 동안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번호를 받아 배달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하는것인지,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인지 아무튼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문자를 썼다. (유 샌드 메세지!)
 물 2박스랑 콜라 2패키지. 그리고 주소를 써서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오케이. 아윌 컴 투마로 모닝, 투마로."

 아저씨가 내일 오전에 온단다. '내일 일요일인데 투마로??? 역시 주말 상관없이 영업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투마로? 오케이. 씨유 투마로."


일요일


 오전 내내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오지 않았다. 에이 우간다 사람이 그렇지 뭐. 늘 약속을 안지킨다고. 어쨌든 오늘 온다고 했으니까 오늘 안으로 오겠지.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기다린게 손해보는 것 같았지만 참았다.
 오늘 아저씨가 올 줄 알고 물을 사놓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물을 정수해 보리차를 끓여 먹었다.

월요일


 아저씨는 아침 8시에 전화해서 나를 친히 깨워주셨다.(월요일 수업 없는 날이다) 오늘 갈건데 집에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8시에 전화를 했으니 못해도 두시간 안에는 올 줄 알았다. 그 후로 오전내내 연락이 없었다. 정오가 지나서 통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2시 쯤에 전화를 다시 했다. 받았다. 언제 오냐 물었더니 물을 기다리고 있단다. (어디서 떼오는 모양이었다) 4시에 오라고 했다. 2시간이나 여유를 주었으니 충분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4시

 그래서 아저씨 왔냐고? 왔으면 포스팅 안하지. 5시에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거의 다 왔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5분만 더 달라고 했다. 훗, 5분? 믿을 쏘냐.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5시 반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우리집이 정확히 어디냐고 물었다. (아니 아재요, 주소 자세히 적어드렸잖아요) 다왔으니까 복도로 나오란다. 나왔다. 아저씨 외 아파트 경비 아저씨 2명이 물 박스를 들고 왔다.
 그런데 다짜고짜

 "유어 홈 베리 퐈"(Your home very far)

 라고 했다. 응? 주소 첨에 적어놨자나... 멀면 주문을 받지 말던가... ㅡㅡ
 하지만 난 2년동안 우간다에서 살았던 고수다. 분명히 교통비나 팁 명목으로 조금 더 뜯어내려는 수작인것을...

 경비아저씨 두명도 물박스를 내려놓은채 가지 않고 있었다. 내가 고생한다고 나눠준 캔디를 뜯어 먹으며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이즈 낫 워킹"

 6층까지 걸어왔단다. 정전이 되어서 엘리베이터를 못타고 계단으로 물박스를 들고 왔다고, 나에게 씩씩거렸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이 물을 들고 와줬으니 스몰머니라도 주라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웬만한 우간다 사람의 투정에 보살이 되어 넘어가는 나였지만, 이번엔 나도 터져버렸다. 아니 엘리베이터 고장난게 내 탓입니까, 여기 보스한테 뭐라고 하세요. 어쨌든 이건 당신의 일이고 당신이 들고와야 했던걸 저 사람들이 도와준거니까 당신이 수고비를 주던지 해야지 그걸 왜 내가 줍니까? 그리고 아저씨 내가 일요일오전부터 기다렸다고요.......

 격양된 내 목소리에 눈치보던 경비 아저씨들은 조용히 내려갔다. 물배달 아저씨는 처음엔 뭐라뭐라 대꾸하더니 내가 늦은 것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들자 말꼬리를 내리며 영수증을 내밀었다.

 나는 영수증을 확인하고 돈을 주었다. 잔돈이 없어서 거스름돈 1000실링은 받지 않았다. (결국 수고비로 준 게 맞다. 딱 맞춰 줄 수 있었다.) 보너스로 1000실링을 받은 아저씨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음에 또 나에게 주문을 해달라고 말했다. 다음번엔 늦지 않게 오겠다고. 언제는 베리 퐈 라며???

 아저씨가 돌아가고 난 한숨이 나왔다. 어째서 우간다 사람들은 그런걸까? 늦어 놓고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에게 수고비를 요구했다. 이틀 내내 기다렸던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리라.

 집이 좀 잔잔해지고 내 마음도 평화가 오니 문득 떠올랐다. 그거 뭐 얼마 된다고, 그래도 6층까지 올라온다고 고생한 경비 아저씨들에게 500실링씩 나눠 줄 수도 있었다.(1000실링은 약 300원) 아니면 콜라 두 팩(24개)이나 되는 것 중에 하나 씩 꺼내 수고했다고 줄 수도 있는 거였다. 그게 뭐 얼마 된다고. 그런데 순간 이성을 잃고 사나운 개가 되어 짖은 꼴이었다. 나는 아직도 우간다에 적응하지 못한거였다. 보살이 되려면 아직 1년은 더 필요한가 보다.
 우간다에서는 정말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어쨌든 우간다에 오래 있으면 1.화병이 나서 자제력이 줄어들거나 2.어지간한 일에는 화가 잘 나지 않는 보살😯이 된다. 약간 이렇게 ^_^응 (눈은 웃는데 웃는게 아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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